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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댐 물 10만톤 확보…도시 기반 갖춘게 가장 큰 보람”
“공직자들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해 줘야”
최희욱 전 경산시장에게 듣는다
2019년 02월 26일(화) 16:05 [경산신문]
 

↑↑ 남매지 서지 김윤식 시민 시비 제막을 주도한 최희욱(동그라미) 전 시장이 제막식을 주도하고 있다.
ⓒ 경산신문

-안녕하십니까? 경산신문 신년기획특집으로 최희욱 전 경산시장님을 만났습니다. 기해년 새해가 20여일이 지났는데 퇴임 이후 근황도 듣고 지금 경산시의 현안들에 대해서도 고견을 듣는 그런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시장님 먼저 경산시민들에게 새해인사부터 해주십시오.
네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경산신문 최승호 대표님과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해까지 정말 어려웠습니다. 존경하는 우리 경산시민 여러분, 기해년 새해에는 소망하시는 일이 모두 이룩되시고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시장님 현직에 계실 때도 제가 몇 번 인터뷰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 않습니까.

-연초에 많이 바쁘실텐데도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인터뷰는 경산신문 지면과 경산팟 라디오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먼저 최희욱 시장님 공직생활을 정리해 주신다면?
지난 1961년도 국가 5급공무원 공채시험에 합격해서 첫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제가 13개 시군과 도청에서 42년 동안 공직생활을 하면서 제가 태어났고 자란 곳이었기 때문에 저는 한 시도 경산시를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1993년에 처음으로 제가 경산군수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전에 봉화군수 고령군수 영일군수를 거쳐 시민 여러분들 덕분에 경산군수로 오게 되어서 시민들께 봉사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1995년까지 경산군수로 공직생활을 했으며 그 뒤에 95년 6월 27일, 민선1기 경산시장 선거가 있어서 우리 경산에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출마해서 초대 민선시장으로 당선, 임기 3년을 마치고 2기 시장선거에 또다시 당선되어 4년 임기를 마쳤으니까 제 시장 재임기간은 1995년 7월 1일부터 2002년 6월 30일까지 총 7년입니다.

-42년 공직생활 가운데 기억에 남는 분들도 계시지요?
네, 이렇게 대과없이 공직생활을 42년간 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는 두 분의 스승과 또 한 사람의 조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서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두 분의 스승과 한 분의 조력자를 여기서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네. 제가 처음 62년도에 고령군 공보실장으로 발령받아 근무하던 중에 1993년도에 김우현 경상북도지사께서 군수로 명을 받아 왔습니다. 그분을 모시는 동안 저는 그분에게 덕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김우현 지사님은 저에게 첫 스승이셨고, 두 번째 스승은 제가 도청에서 서무계장으로 근무할 때 박재복 내무국장을 모셨습니다. 그 내무국장을 모셨을 때 저는 청렴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공직생활하면서 두 가지, 덕과 청렴. 두 분의 스승 덕분에 제가 무사히 공직생활을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조력자, 제가 공직생활하면서 어려웠을 동안에 저에게 버팀목이 되어준, 정말 저에게 보석같은 친구, 하나뿐인 내 편인 저희 가족입니다. 정말 저희 가족은 제가 42년 공직생활하는 동안 크나큰 버팀목이 되었고.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13개 시군 객지생활, 공무원 생활, 국가에 이바지한다고 다니는 동안, 혼자서 교편을 잡고 선생으로서 아들 셋을 교육시키고 살림도 살고 무척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 크는데 하나의 도움이 못 되었고 모두가 우리 가족이 키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직생활 하는 동안에 늘 저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어렵게 컸고 어렵게 공직 생활하니, 묵묵히 일하는 사람을 발탁하고 승진하게 하라”고 저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잊지 않고. 저는 공직생활 하는 동안 그것을 거울 삼아 그것을 실천하려 노력했습니다. 저에게 정말 둘도 없는 조력자, 버팀목이 저의 바로 가족입니다.

-공직경력을 보니까 사무관에서 정책보좌관으로 있는 30년 가까이 도내 13개 시군을 다니셨는데 어떻게 경산에서 근무하는 경력이 없습니다. 못하신 겁니까?
제 능력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그 당시 경산군은 정말로 공무원들의 최고 근무 희망지였습니다. 경상북도 북부지역에 근무하다가 도청에 근무하려면 항상 경산군을 거쳐야 했습니다. 저는 연줄도 없고, 운동할 능력도 없고, 항상 경산에 오고 싶었지만 올 기회가 없어서 오지 못했습니다.

-경산에 많이 오고 싶으셨습니까?
아 물론이지요. 정말 고향에서 봉사하고 싶었는데 그게 되지 못해서 늘 저는 객지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지요.

-마지막으로 관선 시장이셨는데 행운이 조금 따라줬다고 보십니까?
네 정말 보이지 않는 귀인이 저를 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제가 올 수 없게 되어 있었는데, 제가 칠곡군에 근무할 때 아는 분이 고향에서 근무할 수 없느냐, 저한테 물어보셨습니다. 제가 갈 수 있는 힘이 없다고 했더니 이영창 국회의원을 모르시냐, 저는 국회의원 한 분도 아는 분이 없습니다. 그럼 나하고 같이 가자, 그래서 같이 갔더니 정평동 관사에 가서, 제가 이제 공직생활 마치게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경산군수로 오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고인이 된 이영창 국회의원께서 저를 한참 보시더니, 왜 이제 와서 이야기 하느냐. 나는 벌써 다른 이를 경산군수로 보내달라고 도지사한테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했어요. 이남철 청도군수를 경산군수로 보내달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하길래, 그러면 도지사님께서 인사를 하시면 좀 수용해 줄 수 있겠습니까, 했더니 그건 그렇게 하지, 라고 답을 해주셔서 제가 이판석 도지사님께 가서 이영창 국회의원님께서 양해를 해주시겠다고 하셨으니 저를 경산에 좀 보내달라, 그러면 경산으로 보내주겠다, 그렇게 해서 제가 경산에 오게 되었습니다.

 
↑↑ 지난 1995년 7월 1일 초대 민선시장으로 취임한 최희욱 전 시장.<경산신문 160호 1면기사
ⓒ 경산신문 
-마지막 관선시장이 되신 뒷이야기가 있었네요. 8대 경산시장이셨고, 민선1기 경산시장님이셨는데 당시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셔서 33%, 2만 6000표로 당선되셨는데, 그때 당시에 어떤 분들이 출마를 하셨습니까?
그때 출마를 여섯 분이 했지요. 시장, 군수 출신이 세 분, 도의원 한 분, 시의원 한 분, 경산지역 유력한 인사 한 분. 이렇게 여섯 분이 출마했습니다.

-여섯 명에 33% 같으면 아주 압도적인 지지였는데?
압도적이라면 압도적이고, 상당히 선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나왔는데 그때 마침 공천을 받은 분이 제 친구인 박재찬 군수였어요. 제 앞에 경산군수를 하셨고, 그분은 인맥이나 재력이나 엄청난 가정을 갖고 있는 분인데, 제가 당할 수도 없는데, 내가 경산시민을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하겠다는 각오로 무소속으로 제가 출마하게 됐는데. 경산시민들이 제 진정성을 잘 봐주셨는지 저를 선택해 주셔서 경산 시민분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그 은혜를 평생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시장선거를 앞두고 주민등록 위장전입, 뭐 이런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게 시장님께서 당선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 그 당시 사건 전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정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는지 안 미쳤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후보자 등록을 하고 선거에 대한 설명회가 있다 해서, 시청에 들렀더니. 그 당시 안윤식 시장이었습니다. “아니 선배님, 어떻게 선거를 앞두고 주민등록을 옮기셨습니까?” 이렇게 이야기를 하길래 제가 깜작 놀라서 알아보니, 과연 제 주민등록이 서부동에서 대구 범어동으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정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하면서 제가 선거유세를 하면서 시민들에게 호소를 했습니다. “제 주민등록은 발이 달렸습니다. 제가 옮기지 않은 주민등록이 대구시로 갔다가 또 바로 옮긴 그 사람이, 바로 다시 경산으로 옮겨놨어요. 그것이 바로 제가 당선되더라도 무효를 시키기 위해 주민등록을 옮겨놓은 걸로 생각이 듭니다.

-누가 그런 일을 했는지는 찾지는 못했습니까?
아 네, 제가 밝히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밝히려고 노력도 안 했습니다. 또 당국에서도 밝히려 노력도 하지 않았고. 그런데 충분히 밝힐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제가 당선되고 난 뒤에 제 주민등록을 재전입하기 위해 신고하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주민등록 취급하는 여직원이, 이 사람 잡아야되지 않겠느냐 했더니 당시 동장이 그만 둬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상대후보와 공천을 준 집권여당에서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뭐 그것을 구태여 밝히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주민등록 위장전입, 그 사건 때문에 동정표가 상당히 많았고, 시민들이 분개했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때 생각하면 제가 참, 눈물이 납니다.

-그런데 시장님 초선을 하고 나서, 나는 이것이 마지막 공직이다, 이렇게 하고 재선을 도전하지 않으려 했다고 들었는데, 재선에 도전했거든요. 재선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어떤 사정이 있었습니까?
제가 첫 민선시장으로 출마할 때 우리 가족이 정말 못하도록 말렸습니다. 그러나 제가 애원했습니다. 한번만, 우리 경산시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내가 출마하니 같이 이해하고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럼 당신하고 나하고 둘이만 하자. 아무도 우릴 도와줄 사람이 없잖아. 그 뒤에 같이 출마한 박재찬 군수에게 내가 두 번째는 내가 안 할테니, 당신이 경산시장을 해야 된다. 그때 그 자리에 같이 앉아있었던 사람들이 네 사람 있었습니다. 하승수, 최덕우 저와 넷. 박재찬 군수가 쾌히 승낙하고 저는 그분이 나오면 도와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거 3개월 앞두고 3월에 저한테 최 시장 제가 도저히 할 수 없다. 가족들이 모두 반대를 한다. 출마할 수 없으니 최 시장이 한 번 더 재선을 해야 된다고 권유해서, 마지못해 다시 재선에 출마했습니다.

-재선 이후에 시장님의 인기가 초선 때보다 더 높았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시장님께서 3선에 나오실 것이다, 3선에 나오면 당선은 당연하다, 그런 여론이었는데 3선을 포기하셨습니다. 3선을 포기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네 저는 꿈에도 그리던 관선 마지막 40대 경산군수를 2년간 했고, 또 민선 초대, 2대 시장을 했습니다. 저는 3선 한 걸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선의 봉사를 했으니 유능한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포기했습니다.

-3선을 할 수 있었지만 후배들을 위해 양보를 하신거네요?
그렇습니다.

-시장님 재임기간이 관선 2년, 민선 7년, 총 9년인데, 이 기간 동안 시장님이 경산시의 기반을 만들었다. 사회기반을 시장님이 하셨다는 평가가 있는데요, 그 당시에 이것을 안 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이것만큼은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업들이 있습니까?
제가 선거 당시 시민들에게 호소한 게 있습니다. 만약 제가 시장으로 당선되면 인구 50만 경산시의 기초를 놓겠다고 했습니다. 기초를 놓는 것 중에 제일 중요한 게 상수도였습니다. 먹을 물이 없으면 도시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 제가 영일군수로 있을 때 구룡포읍이 있었습니다. 일제시대 구룡포읍은 아직도 발전을 못했습니다. 왜냐면 구룡포에 상수도, 수원이 없어요. 먹을 식수가 없습니다. 마침 그때 우리 경산시도 식수, 상수도가 확보가 되어있지 않았어요. 겨우 현상유지만 했기 때문에, 제일 첫째 상수도를 확보해야겠다고 해서 문희갑 대구시장께 운문댐 물을 우리 경산도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습니다. 대구시장님은 좋다고 하셨어요. 근데 친구인 최병윤 국장이 “최 시장 절대 안 된다. 대구시의원들이 운문댐은 대구시민을 위한 식수다, 경산시에 줄 수 없다”고 해서 저는 포기를 하고 아파트 건축허가를 3년간 제한했습니다. 상수도를 확보하고 난 뒤에 허가해야겠다고. 안동 임하댐 물을 자양댐으로 도수하면 그 물 10만 톤을 금호강으로 흘러내리면 우리 경산시가 식수 10만톤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2년 동안 건설교통부에 요청했는데 그게 성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10만 톤을 확보해서 계양정수장에 5만 톤 확장공사를 했지요. 그것이 오늘날 우리 경산시가 아파트 짓고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네 물이 없으면 집을 지을 수도, 사람이 살 수도 없으니까요.
네, 그때 대구시에서 운문댐 물을 안 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작년에 운문댐 물이 없어서 식수가 부족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대구시가 거절해준 것이 다행이었다, 그때 건설교통부와 협의해 영원한 10만 톤을 받은 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군요. 안 그래도 그때 당시에 아파트 허가가 나지 않아서 업자들 원성이 많았습니다.
네 원성이 많았습니다. 저에게는 그 당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아파트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경산의 지금 주택보급률이 125% 또는 130% 라고 하는데 향후 2020년까지 2만여 가구가 더 계획되어 있습니다. 지금 인구는 줄어드는데 아파트를 계속 지어야 할까요, 아니면 이걸 중단을 해야 됩니까. 시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아파트 건립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지금 현재 우리는 아파트숲을 만들고 있는데 아파트를 지을 때는 신중을 기해야합니다. 만약에 이 아파트를 잘못 지으면, 도시가 슬럼화가 되고 공동화 되면 정말 최악의, 그 어떤 사태가 올 수 있습니다. 아파트 건립 정책에 대해선 시당국이 신중을 기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내년 쯤 대임지구 개발계획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저희들 지역신문 입장에서는 지금 서둘게 아니라 조금 더 두고 개발계획을 세우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하고 잇습니다. 시장님 생각하고 비슷합니까?
네 저하고 생각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공감이 됩니다. 지금 아마 개발계획이 되어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임당택지지구는 정부 시책에 발맞춰 임대주택, 소형주택 몇% 넣는다는 걸 강요한다면 개발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나중에 엄청난 재앙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또 이번 기회에 임당택지지구 개발에는 꼭 한 가지를 해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추가되어야 합니까?
지금 우리 경산에는 많은 대학들이 있는데, 대학생들이 창작활동을 하고 창업활동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없습니다. 그래서 임당택지지구에 대학촌 건설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구, 경산, 경북 대학생들이 와서 활동할 수 있는 무대, 그런 프로젝트가 꼭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학원도시 건설 계획을 수립한 적이 있는데 그게 잘 안 되었습니다. 만약에 대임지구가 개발된다면, 그 프로젝트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시장, 군수 9년을 포함해 42년간 공직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공무원 인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장님이 재임시절에 어떤 기준으로 인사를 하셨고, 어떤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셨는지 나름대로 철학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공직자, 공무원은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공직자는 성실하게 정직하게 국민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봉사하도록 만드는 동기부여가 인사입니다. 인사로 인하여 직원들이 신명나게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기회가 됩니다. 가만히 앉아서 햇수만 지나면 올라간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어느 공무원이 정직하게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느냐, 성실한 사람을 발탁해서 영전시키고 승진시키는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시장님께서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하시다보니 공무원 보는 눈은 고 이병철 회장보다 더 밝으시다 던데 사람을 보면 어떻게 다 보입니까?
보이죠. 위에서 보면 저 사람은 말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저 사람을 꾀부리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재주부리는 사람이다, 제 눈에는 환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아마 공무원들을 데려다놓고 관상보고 선택하라 하면, 제가 이병철 회장보다 더 낫게 선택한다고 혼자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공무원 승진을 능력 위주로만 하면, 또 평생을 공직에 있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동장도 해보고 싶고, 과장도 해보고 싶고 해서, 억울할 수도 있는데, 그걸 저는 적절하게 섞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 적절한 게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주 좋은 질문을 하셨는데요. 아주 억울한 사람들이 많아요. 공무원 하면서 제일 소망이 승진인데. 그래서 발탁하는 것과 또 오래 일해서 승진시켜야 될 사람들, 이것을 조화롭게 했습니다. 무조건 일 잘해서 승진 발탁한 것이 아니고, 조화를 이뤄 50대 50 정도로. 발탁위주로만 해버리면 공무원들 사기가 저하됩니다. 조화롭게, 우리 공직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게 초점을 뒀습니다.

-경산시가 최근에 상당히 위기입니다. 2000년 이후에 국회의원 두 분이 영어의 몸이 됐고, 또 경산시장 두 분이 영어의 몸이 됐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적인 도시 같지만, 속으로는 많이 곪아 있습니다. 경산시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현재 최영조 시장이 잘 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우리 시장님이 조금 먼 안목을 보고 시정을 펼쳐주시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직원들 다루는데도, 직원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게 어떤 것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서 해주시면 잘 안되겠는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지금 현재 우리 공직자들이 안이하지 않나, 이런 생각들이 시민들에게 비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공직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그런 데에 조금 애를 써 주시면 하는 그런 바람입니다.

-지금 최희욱 전 시장님이 우리 지역의 가장 큰 원로이신데, 시민들 사이에 주인의식이 없다, 그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앞으로 전 시장님이나 주요 원로분들이 중심이 돼서 우리 시에 조언도 해주시고, 현 시장님을 보필해서 더 나은 시로 만들기 위한 계획이나 그런 마음이 있으십니까?
아주 좋은 말씀인데, 제가 경산시장과 군수를 지내면서, 아쉬웠던 것이 우리 시민들의 주인의식이 박약하다, 시민들이 주인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앞으로 우리 시민들이 내가 주인이다, 라는 주인의식을 고취하는데 우리 시장님이 힘을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원로분들의 시정참여도도 낮은 것 같은데, 그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분들을 원로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원로들의 참여보다도 우리 시민들께서 그것을 만들어가야지요. 그것을 누가 원로라고 나와서 이끌어갈 수도 없는 것이고, 우리 시민모두가 관심을 갖고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장님은 공직생활 가운데 9년을 단체장을 하셨습니다. 마지막 고향인 경산에서 단체장 하시며 공직생활을 마무리 하셨는데, 시장님은 경산시민들에게 어떤 시장으로 남길 바라십니까?
저는 시민으로부터 무한한 은혜를 받았지요. 제가 9년 동안 시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는데 그동안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다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아쉽기도 합니다. 다만 뒤에 후손들이 최희욱이가 경산시를 위해 열심히 일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습니다. 그저 제가 경산시를 위해 정성껏 힘껏 노력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으로 남아줬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우리 공직자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경산시를 위해 일하고 있는 공직자분들에게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공무원 한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시민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우리 공직자는 항상 정직하고 성실하게, 또 청렴해야 됩니다. 또 추진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시장, 지휘관은 어떤 의사결정이 되면, 강력하게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있어야 됩니다. 추진하지 않으면 아무런, 그림의 떡 밖에 되지 않습니다. 계획 세워봐야 아무 필요 없습니다.
우리 경산이 앞으로 무한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기원합니다. 어떤 시장님이 자리하시든, 또 우리 최영조 시장님이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좋은 시장님이 나와서 우리 경산이 발전하도록 우리 공직자들이 함께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렇게 나와 주셔서 장시간 동안 정말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시민들께 하고 싶은 말씀 짧게 해주십시오.
저와 함께 일하던 공직자분들은 이미 벌써 퇴임을 많이 했습니다. 새로운 공직자분들이 많이 계신데, 우리 자랑스러운 경산, 살기 좋은 경산 만드는 데 크게 노력해 주시기 바라고, 우리 시민 여러분들 늘 건강하시고 부자되시기 바랍니다. 이 부자는 재물만 있는 게 부자가 아닙니다. 재물 있는 부자는 감옥 가기 십상입니다. 가정파탄이 다반사입니다.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춘 부자 되세요. 감사합니다.

↑↑ 경산미디어센터에서 대담하고 있는 최희욱 전 시장.
ⓒ 경산신문
최승호 기자  gsinews@gs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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