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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2018년 11월 30일(금) 14:49 [경산신문]
 
세계대전 중인 동유럽 주브로브카라는 가상의 국가에 있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다녀간 세계 최고 부호 마담 D가 살해된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그로 인해 누명을 쓴 호텔 지배인이자 그녀의 연인 ‘구스타브’와 그의 제자 로비보이 ‘제로’가 펼치는 미스터리 어드벤처 코믹 풍자 범죄 탈주 동화 전쟁 멜로를 버무린 영화다.

영화 도입부를 보면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포장지를 열고 그 속에 더 작은 박스를 열고 또 다시 여는 3중 액자식 구조다. 어느 공원묘지에서 한 소녀가 책을 펴면 그 책의 저자가 찍은 셀프 인터뷰로 과거를 회고하기 시작한다. 그 회고를 따라 과거로 들어가면 젊은 날의 저자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주인인 무스타파를 호텔에서 만난다. 무스타파가 저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한 번 더 들어가야 진짜 이야기가 나온다.

액자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 시대 일반적인 영화 화면비율로 바뀌는데 이렇게 치밀한 것은 그 안에 단순한 비율 이상의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다. 바통터치 하듯 사람이 사람을 회상하고 추억하며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간다. 그들은 사라졌을지라도 추억은 화면 비를 보며 그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느끼거나 맨들케잌의 맛과 파나쉬 향수로 남아 있는 것이다.

마담 D의 유산을 노리고 있던 음험한 그의 아들 드미트리는 구스타브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여 누명을 씌우고 구스타브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누명을 풀고 마담 D가 그에게 남긴 유산 16세기 거장 요하네스 반 호이틀의 작품 ‘사과를 든 소년’을 되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지만, 결벽에 가깝도록 치밀하게 구성된 장면에 흠뻑 빠져서 이야기를 빼고도 멋진 영화가 완성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모든 공은 웨스 앤더슨 감독에게 돌아가겠지만, 이미지만큼은 20세기 유럽 고전영화와 동독의 낡은 백화점 체코 카를로비바리의 고색창연한 호텔 등에서 받은 영감을 뒤섞어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낸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스톡 하우젠에게 있지 않나 싶다. 구체 관절 인형인데 이음매가 보이지 않아서 놀랍다고나 할까. 영화 이전에 무대미술을 기반으로 활동했다는 스톡 하우젠이 차린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명절종합과자 선물상자를 받은 듯 행복이 느껴졌다.

흥미진진한 십자열쇠협회의 도움으로 탈옥에 이르는 과정은 긴장되고 익살맞고 흥미롭다. 결국 제로의 연인 ‘아가사’가 사과를 든 소년 그림을 찾고, 그림 뒤에 숨겨져 있던 기밀문서에는 마담 D가 두 번째 작성한 유언장 사본이 있었다. 그 유언장에는 자신의 전재산을 구스타브에게 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구스타브는 모든 혐의를 벗고 호텔의 주인이 되고 제로와 아가사는 구스타브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린다. 결국 주브로브카 공화국이 없어지자 루츠로 향한다. 영화 초반에 본 장면처럼 기차가 멈추고 군인이 신분증을 검사한다.

제로가 말한 것처럼 구스타브는 속물이 되어가는 세상에서 호텔리어로서 품위를 지키면서 살아온 순수한 인물이었다. 파시스트가 득세하는 야만의 시대에 분홍빛의 호텔은 어울리지 않는 것일지 모르지만 유머와 관용과 그 밖의 아름다운 것들이 폭력과 증오를 끌어안을 것이라는 감독의 희망 같은 것이 아닐까.

마담 D의 아들 드미트리 그리고 그에게 고용된 사람들이 핏줄과 물질로 연대를 맺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구스타브와 제로, 그리고 구스타브를 도와준 호텔 관리인들의 십자열쇠협회는 국가와 혈연과 자본이 아닌 휴머니즘과 가치의 연대를 맺고 있다.

쇠락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동등한 자립적 존재로서 서로를 배려하고 공감하는 구성원들이 느슨하게 연대를 맺고 있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그립다.

안창규(사월도마 대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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