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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무너지는 가정을 생각한다
2019년 05월 09일(목) 11:06 [경산신문]
 
지난 5월 5일 새벽, 경기도 시흥에서 일가족 4명이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짤막한 소식이 굵직굵직한 기사들 사이에서 끼워져 있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온통 무거운 기사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가운데, 하필 또 그날은 어린이날이었다. 방송사들의 뉴스에는 하늘로 치솟는 북한 미사일에 뒤이어 행복한 아이들의 얼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에, 삶의 의지가 꺾여버린 젊은 부부의 막다른 선택에 희생양이 된 4살, 2살짜리의 비극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주목받지 못했다기보다는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소식이 더 이상 뉴스로서 가치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수천만 원의 빚 때문에 젊은 부부가 어린 자녀의 목숨까지 거두어가며 세상을 등지는데 서울 강남의 한 클럽에서는 하룻밤의 유흥을 위해 수천만 원을 쓰는 사람도 있다.

천당과 지옥이 한 하늘 아래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달에는 13살 짜리 어린 소녀가 의붓 애비와 생모에 의해 무참하게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다. 우발적 사건도 아니었다. 친부로부터 수시로 폭행과 학대를 당해왔고, 의붓애비로부터도 학대와 폭행, 심지어 성추행까지 당하다가 끝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 어린 소녀는 학대와 폭행의 수준이 아니라 언젠가는 의붓애비가 자신의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음을 직감한 듯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어린 생명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생모는 자신의 딸이 죽어가는 현장에서 친절한 도우미 역할을 자처했다. 천하무도의 시대라 했던 춘추전국시대가 이보다 더 참혹했을까. 진주에서 일어난 방화·살인 사건에서도 12살, 18살 어린 생명이 무참하게 희생되었다. 범행 직전 범인의 이상행동을 보여주는 CCTV 화면에서 황급하게 집으로 달려 들어가는 소녀의 모습과 그 뒤를 따라가는 범인의 거친 행동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친척집에 얹혀살던, 신체장애가 있던 18살짜리 소녀는 이웃집 아저씨의 상습적인 위협과 겁박에 따른 공포에 시달리다 끝내 무참하게 목숨을 잃어야 했다. 또 세종시에서는 층간 소음을 둘러싼 시비로 이웃이 휘두른 칼에 또 한 사람이 쓰러졌다. 내 이웃이 북한의 미사일보다도 더 위험한 세상으로 돌변한 것이다.

5월, 가정의 달을 입에 올리기에는 무너지고 있는 가정이 너무 많다. 가정이 무너지면서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 생명까지 덩달아 무너지고 있다. 오늘 하루 내 삶을 온전하게 버티어낼 수 있을 지에 대한 확신조차 가질 수 없는 불안한 세상이다. 그런데 내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북한의 위협이나 불량배들의 발호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내 이웃들, 아니면 한집에 사는 친족과 혈육이라는 사실이 더 심각한 일 아닌가. 이런 세상은 방어능력이 없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지옥이나 다를 바가 없다.

국가가 국민에게 생명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으리란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그 나라를 문명국가라고 할 수는 없을 터.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안전을 보장받는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특권층이나 사설 경호원을 고용할 수 있는 거부들뿐이다. ‘버닝썬’사태의 도화선이 되었던 VIP들의 신변과 안전은 경찰은 물론 언론으로부터도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는 반면, 친부모로부터 학대 받는 아이들의 수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위기가정의 아이들, 이 험한 세상을 그들은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나.


김진국
신경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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