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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것과 저물어가야 할 것들
2019년 12월 19일(목) 10:15 [경산신문]
 
경자년의 일정들이 담긴 새 달력이 나돌기 시작한 지도 벌써 오래 전의 일, 시나브로 또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시간이라는 것이 원래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지만 인간이 공연히 일년 365일과 4계절로 나누어놓고서는 시간의 흐름에 애달아 하기도하고, 가슴 벅찬 기대로 새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하는 것... 그게 또 어찌 보면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이기도 한데, 어찌됐든 흘러가는 시간을 사람이 어찌하겠는가. 기해년도 이제 끝물이다.

분명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겉보기에는 화려하기 짝이 없지만 편법과 특권, 특혜로 일구어 놓은 모래성 같은 한 시대가 저물고 있고 또 저물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세월의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갔어야 할 구시대의 적폐는 여전히 기세가 살아 떵떵거리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할 만한 불씨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기가 힘들다.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찾기 힘든 제일 큰 이유는 아마도 지난 한 시대를 지탱해왔던 경제성장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는데 있는 것 같다. 그 바탕에는 인구구조의 변화 즉 고령사회라는 엄혹한 현실이 깔려 있다. 한국사회의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중요한 사회문제가 된 것이 1990년대 후반부터인데, 백약이 무효라고 해야 할 정도로 한국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사회가 되고 말았고,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다음 세기에는 한반도에서 한국인이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인류가 펼친 경제활동의 대가로 어느덧 우리들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든 기상이변이라는 환경의 변화도 현 세계체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요인들이 청년들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청년들은 당장 현재의 가능성에 대한 기회가 더 많이 몰려 있는, 아니 집중되어 있는 수도권으로 몰려든다. 그만큼 지방이 늙어가는 속도는 더 가속화 될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지방은 희망이, 미래가 있는가. 아니면 가뭇없이 저물다가 결국 소멸되고 말 것인가.

기해년이 저물고 새해가 밝아오면 세상은 4월 총선거 때문에 정치가 세상을 집어 삼키게 될 것이다. 아마도 ‘구시대의 적폐청산’과 ‘정부여당의 독재타도’라는 구호가 사생결단의 태세로 대립하게 될 것이다. 그 틈새에서 과연 ‘지방의 위기’라는 지방의 당면한 현실의 문제가 선거에서 쟁점이 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사에서 지방은 언제나 중앙정치의 들러리였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그러할 것이므로 지방의 문제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쟁점이 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이 절박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성적과 출신대학, 사는 지역, 살고 있는 아파트 평수, 몰고 다니는 차, 연봉 액수, 직장에서의 직위로 사람의 능력과 인격까지도 평가하는 기성세대들의 잣대로 미래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을 다그치고 몰아붙이는 교육은 저무는 기해년과 함께 저물어가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끔찍한 양극화 사회가 된 원인도 그런 식의 출세 지향적 사고에 뿌리가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면 이제 어른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공부 잘 하냐”고 묻지 않고, “요즘 행복 하냐”라고 묻는 그런 시대의 원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성세대의 출세 지향적 사고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도 않고, 단지 어린 청소년들의 몸과 영혼을 혹사시키는 채찍과도 같은 것일 뿐이다.

김진국
신경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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