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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어 힘들지 않았습니다”
2019년 제12주년 세계인의 날 기념 수기공모전 국민부문 최우수상

경산야학 우리학교에서 초중고 졸업 후
법무법인금성에서 근무 중인 경동수 씨
2019년 07월 18일(목) 10:45 [경산신문]
 

 
ⓒ 경산신문 
어렸을 때부터 남동생과 같이 베트남에 위치한 시골(껀터)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1999년도에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에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남동생이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는 북쪽 수도권에 가서 일을 하셨는데, 그렇기 때문에 1년에 한번 정도 시골에 우리를 보러 오셨습니다. 제가 먹고 살기 위해 일찍 사회에 나가서 많은 일을 했지만 많은 사람에게 무시를 당했습니다. 심지어 시골에서 나이 같은 친구조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면서 2008년경 엄마가 현재 한국 아버지를 만나 재혼을 하게 되었고 한국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희 집이 너무 힘들어서 국비지원을 받아서 공부했었는데 엄마가 외국인과 결혼하셨다는 이유로 국비 지원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하여 학교를 다니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공부의 꿈을 포기 못해서 일을 하면서도 주경야독으로 공부를 했는데, 먹고살기 힘든 탓에 다시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남동생은 계속 공부할 수 있었고, 2011년도에 한국 아버지께서 입양해주셔서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를 ‘다문화가족 중도입국자녀’라고 부릅니다.

드디어 저는 2011년 많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김해국제공항으로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경북 경산시에 살고 계셨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부모님을 뵈러 경산으로 갔습니다.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뻤고, 어머니가 다니고 계시는 경산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어머니와 함께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고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 집 또한 잘 사는 편이 아니라서 오전에는 경산시 다문화 가족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저녁에는 집 근처에 있는 장갑공장에서 가서 알바를 했습니다. 다행이 공장 사장님이 좋은 분이라서 저한테 알바를 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당연히 알바비도 싼 편이었고 제가 일을 열심히 해야 했지만 그래도 사장님 덕분에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공장에 일했던 시기 동안에 힘든 부분도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사장님 덕분에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어서 지금까지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도 공부의 꿈을 포기 못해서 혼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할 계획을 세우고 공부도 하고 일도 하느라 힘들 때도 많았지만 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아직까지도 그 당시에 저는 ‘저 자신과의 시간 전쟁’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살았던 곳은 경산시 계양동이었고, 평일 월, 수, 금요일에는 오전에 경산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가서 한국어를 배웠고 오후에는 집에서 방문교육을 받았습니다.

토요일에는 진량공단에 있는 수녀님들께서 운영하시고 있는 배움터에 가서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일요일에는 영남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잠깐 배웠는데, 영남대학교총장이 주는 노력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받은 상이라서 그런지 매우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남동생 또한 한국에 초청하기 위해 일도 열심히 했었습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지원해주신 10개월 간의 방문교육이 끝나고 수녀님들께서 운영하시는 성바오르 배움터와 경산대안교육센터(경산우리학교-야학)에 가서 도움을 받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청춘을 포기한다는 마음으로 노력하였습니다.

2013년 05월 14일에 중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2013년 8월에는 고등학교에 입학 할 수 있는 고등학교입학자격 검정고시를 봤지만 불합격하였습니다. 3번의 시험을 보고 나서야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고, 기분은 매우 좋았지만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하루는 제가 병원에 갔는데, 의사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제가 B형 간염에 걸릴 수도 있고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6개월마다 병원에 가서 피검사와 초음파를 받아야한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병원에서 이 이야기를 통보받았을 때 온 힘이 다 빠졌습니다. 사실 2012년도부터 병원에 다녔지만 이렇게까지 병세가 심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한동안 아무것도 못 했는데, 그래도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어도 멋지게 살아야 한다고 마음먹었고 저의 꿈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이러한 힘든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해에 남동생이 한국에 왔는데, 남동생은 태어났을 때부터 남들보다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힘들어도 남동생이 성인되어 대학교에 입할할 때까지 생활하는데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겠다고 스스로 맹세했습니다.

남동생한테 많은 공부를 시켰고 남동생도 이런 저의 마음을 알아서인지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저희 둘이 함께 노력하면서 2015년도에 드디어 제가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에 합격을 하였고, 한국 국적 시험에도 합격하여 주민등록증을 받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해에 1종 보통 운전면허도 취득하였고 사동성당에서 세례명을 받는 등 많은 일을 겪으면서 바쁜 한해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같은 해에 남동생이 중등 졸업시험과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를 통과하면서 저처럼 주민등록증을 받아 한국 국민으로서 살 수 있게 되었는데, 제가 생각할 때 2015년도는 참 행복했던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 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이 되었습니다. 저도 성공해서 저와 같은 중도입국자녀나, 저희 어머니처럼 다문화 결혼 이민자 그리고 이주 노동자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제가 열심히 공부하여 성공해야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자격이 필요하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문제로 남동생 혼자 사동고등학교 인문계열에 보내고 저는 영진사이버대학교에 경영학과에 입학을 해서 저녁에는 인터넷으로 공부를 하고 오전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 회사에 취직하였습니다. 처음으로 갔던 회사는 프로모션 의류 회사였습니다. 성격이 맞지 않아 그만두었고, 영진사이버대학 졸업과 동시에 경희대학교 글로벌미래교육원 관광학과 주말 특별반에 입학해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울 서초구에 있는 법무법인(유한)금성에 사무직원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 와서 일하면서 저와 같은 외국인한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꿈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월부터 금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을 하고 토요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경희대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일요일에는 보통 미사를 드리려고 성당에 가거나 급한 손님이 있으면 일요일에도 나와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동생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화장품회사에서 해외마케팅 통역사로 입사하여 일하고 있기 때문에 평일에는 저처럼 일하고 저녁에는 영진사이버대학교 복지학과에서 공부를 하면서 편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살의 나이에 다른 친구들은 마음 편히 공부도 하고 놀고 있는데, 제 동생은 어린 나이에 일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어서 형으로써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지만 현재 저희의 상황에서는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현재 남동생과 신림동에 있는 작은 원룸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는 둘이 출근하고 저녁에는 집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집이 작아서 바쁠 때나 과제를 해야할 경우에는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과제를 합니다. 저희 집 앞 카페는 24시간 영업을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공부할 수 있는 이유는 그동안 많은 분들께 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경산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선생님들께서 많은 것을 지원해주셨고, 2012년부터 2016년 2월까지 경산우리학교(야학) 선생님들께서도 많은 도움을 주셔서 검정고시를 무사히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제가 베트남 출신이라 모든 부분에서 일반적인 한국인들에 비해 취약했는데, 성바오로 배움터의 수녀님들과 선생님들께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데 개별 과외로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야학에서 같이 공부했던 어머님들도 감사합니다. 남동생도 늘 믿어주고 형이 하는 말 잘 따라줘서 고맙고 수고했다고 전해주고 싶습니다. 현재 아버지는 친아버지도 아니신데도 불구하고 뒤에서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경동수 씨는 지난 2012년 11월 새날반(초등과정)에 입학해서 2015년 하늘반(고등과정)을 졸업했다. 3년 만에 초중고 전 과정을 수료하고 영진사이버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 서울소재 법무법인 금성에 재직하며 경희대 글로벌미래교육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경동수 씨는 이번 수기공모 최우수상 상금 중 절반을 경산우리학교에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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